
역사/문화
| 읍면구분 | 남면 |
|---|---|
| 제목 | 창원리 |
| 내용 |
창원리
■ 원골(院谷) 연당역이 있는 되골에서 철도를 넘어 서남쪽으로 약 3마장의 거리에 있다. 마을 입구에는 『孝婦幼學高秀昌妻三陟金氏之碑』라는 열녀각이 세워져 있다. 열녀각 뒤에는 매차나무 숲이 우거져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고목은 이 원골 마을의 서낭목(城皇木)으로 신봉되고 있다. 원골 우측에 있는 바른골을 지나면 밝은 밭으로 갈 수 있다. 옛날 행인들에게 숙식(宿食)의 편의를 제공하던 원(院)집이 있었으므로 '원골'이라고 한다. 이곳은 매뱅이를 지나 영춘면(永春面), 하유암(下遊岩)으로 가는 길과 물매기와 담터골을 지나고 새술막의 원터를 거쳐 충북 제천(堤川)으로 가는 길이 있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원(院)이란 역(驛) 부근의 교통 요로(要路)나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하여 인근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을 원주(院主)로 선출하여 관리하게 하였다. 원의 관리비로는 큰길은 1결 35분, 중앙 길은 90부, 작은 길은 45부의 토지를 지급하였다. 원골은 삼척 김씨 집성촌으로 예전에는 30여 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15가구가 산다. ■ 바랑골 원골 남쪽에 있으며 스님들이 시주 다닐 때 쓰는 바랑처럼 입구가 좁고 골 안이 넓게 생겼으므로 '바랑골'이라 한다. ■ 창골(倉谷) 「영월부읍지」에 『서창은 양연리에 있으며, 읍에서 거리는 정리이고 규모는 12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 대동미와 세곡을 보관하였다가 남한강 뱃길로 원주군 부론면 섬강에 있는 '홍원창'으로 옮긴 후 다시 서울 마포에 있는 경창(京倉)으로 옮겼다. 1914년 3월 1일에 조선총독부령 111호인 지방 행정 구역 개편으로 서창이 있었던 남면(南面), 창동리(倉洞里) 일부가 서면(西面) 쌍룡리의 북상리(北上里)로 편입되었고 북하리인 용동골은 후탄리로 편입되었다. ■ 지소덕(紙所) 연당리 철길 너머에 있다. 되골에서 원골로 접어드는 우측 언덕위로 맑은 물이 솟아나는 큰 샘이 있는데 한지를 만들 때는 물이 좋아야 종이의 결이 곱다고 한다. 이곳은 예전부터 닥나무를 가마솥에 쪄 그 껍질로 한지(韓紙)를 만드는 지소(紙所)가 언덕 위에 있었으므로 '지소덕'이라고 하였다. 한지는 닥나무 속껍질을 삶은 다음 발에다 걸러서 떠내는데 '조선종이'라고도 한다. '덕'은 '언덕'을 뜻한다. 지금 이곳에는 풍부한 물로오리를 사육하여 오리탕을 만들어 파는 원골식당이 있는 곳이다. ■ 진밭들(辰田들) 연당 돌고개를 지나온 철교와 38번 국도가 마주치는 급커브의 남쪽에 있다. 이곳에는 밭이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뻗은 사래 긴 밭이 있으므로 '긴밭→진밭'이라 하고 그 주위를 '진밭들'이라 한다. ■ 물매기 38번 국도에서 천태종 본사(本寺)인 구인사로 갈라지는 신작로와 밝은밭(明田)사이에 있다. 남면(南面)의 양연역(楊淵驛)에서 말을 타고 지소덕과 원골(院谷)을 지나 이곳에서 말(馬)에게 물을 먹였으므로 '물매기'라 하였다. ■ 마리들(馬坪) 물매기 주위에 있는 넓은 들녘의 논밭을 말한다. 물매기에서 말(馬)에게 물을 먹이고 이곳에서 풀을 뜯기며 쉬던 곳이다. 연당의 양연역(楊淵驛)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기마(驥馬) 3필, 짐을 싣는 복마(卜馬) 3필, 역리 29인, 남자노비 19명, 여자노비 20명』으로 구성된 보안도(保安道)소속의 참하찰방(參下察訪)이 다스리는 조선시대의 역촌(驛村)이었다. 국가에서는 이곳에다 마위전(馬位田)을 지급했으므로 '마위전→마전→마평(馬坪)→마리들'로 변하였다. ■ 밝은밭(明田) 창원리(蒼院里)와 충북 영춘면 유암리(遊岩里)와의 경계가 되는 마을이다. 서쪽에서 뻗어 내린 초롱봉(草롱峰) 줄기가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다. 초롱불이 밝게 비치는 마을이라고 하여 '밝은밭'이라 했는데 1914년 일제(日帝)가 한문(漢文) 표기법으로 고쳐서 순수한 우리말 땅이름인 밝은 밭을 '명전(明田)'이라고 하였다. ■ 지소(紙所) 이곳은 옛날부터 문종이를 만드는 지소(紙所)가 있었는데, 밝은밭은 물이 좋아서 종이 색깔도 좋았다고 한다. 한지는 보통 조선종이라고 하는데 닥나무를 다발로 묶어 가마솥에 푹 삶은 다음 닥나무 껍질을 벗겨 말린다. 말린 닥나무 껍질은 냇물에 불려 발로 밟은 다음 속껍질은 양잿물에 삶아내어 닥풀 뿌리액과 고루 섞은 다음 발에다 걸러서 종이를 떠낸다. ■ 두꺼비 바위 밝은밭 뒤에 있는 두꺼비 형상의 큰 바위이다. 이 마을 어디엔가는 당대에 발복(發福)할 수 있는 명당이 있는데, 초롱봉에서 꾸불거리며 뻗어 내린 산줄기가 뱀의 형상으로 이 명당을 위협하였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뱀과 상극인 이 두꺼비 바위를 극진히 위하면서 명당을 보호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솔고개(松峙) 창원 삼거리에서 새술막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곳에는 큰 소나무가 많아서 '솔고개'라 하는데 지금도 서낭당 주위에는 늙은 소나무가 많다. ■ 솔갱이(송정) 진밭에서 새술막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폐교가 된 창원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이다. 옛날부터 소나무가 많은 동네이므로 '솔갱이'또는 '송정(松亭)'이라 하였다. 그 뒤에는 송정공동묘지가 있다. ■ 원터 창원리의 새술막 북쪽 철길 건너편으로 현재 조을용(趙乙龍)씨가 살고 있는 집터이다. 이곳은 행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주던 원(院)집이 있었으며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물도 있다. ■ 자료출처:「영월 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저자 엄흥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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