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바로가기

영월에 가면 행복이 흐른다

역사/문화

지명유래

Home 역사/문화 지명유래
작성일 2017.12.04 , 조회수 1574
역사/문화>지명유래 상세보기 - 읍면구분, 제목, 내용, 파일 정보 제공
읍면구분 남면
제목 북쌍리
내용 ■ 참나무재
남면지서가 있는 되골에서 창원리로 가는 38번 국도 우측 꽃밭양지(버스 간이정류소가 있는 곳)쪽으로 느슨하게 늘어진 고개이다. 후탄리, 옹정리, 북쌍리 사람들이 이용하는 유일한 교통로로, 예전에는 큰 참나무 한 그루가 고갯마루에 있었는데 새마을운동 때 고갯길을 확장하면서 없어졌다. 즉 참나무가 있던 고개이므로 '참나무재'라고 한다.

■ 들골나루터
들골에서 후탄리로 건너가는 나루터이다. 지금은 잠수교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 들골(坪洞)
참나무재를 넘어 들골나루터 건너에 있다. 일명 '줄골'이라고 부르는데 나루터를 중심으로 옹정리 쪽을 '윗들골(上坪)', 돈디쪽을 '아랫들골(下坪)'이라고 한다. 신씨(辛氏), 이씨(李氏), 안씨(安氏)들의 집성촌으로 들녘이 넓은 골짜기이므로 '들골(坪洞)'이라 한다. 땅이 기름지고 농사가 잘되는 부촌으로 강을 따라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주변의 자연 경광이 빼어나서 여름 한철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 들꽃민속관
윗들골의 가냇절이 있는데, 수백 년 지난 큰 느티나무와 영월의 전통 가옥으로 지정된 우구정씨 집이 있다. 민속관 앞에는 푸른 잔디밭 사이로 광탄리의 넓은 여울과 오루봉이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들꽃민속관은 권정인씨가 조상들의 손때가 묻은 민예품을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에는 농기구, 토기, 여성들의 장신구, 옹기그릇 등을 진열했는데 들꽃민속관이란 이름은 관장인 권정인여사가 들녘에 피어나는 들꽃을 너무 좋아해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 구준봉, 달봉
들골 강 건너로 후탄리의 문둔 모퉁이에 있는 큰 벼랑을 말한다. 구준봉에 구름이 자주 끼면 그 해는 비가 많이 와서 흉년이 들고, 그 옆에는 달봉에 정월 대보름 밝은 달이 뜨면 풍년이 든다는 얘기가 이곳 마을에 전해지고 있다.

■ 괴목재(槐木峙)
북쌍 2리인 돈디의 못도리(연못앞)에서 들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곳에 큰 느티나무(槐木)가 있었으므로 '괴목재'라 불렀다. 괴목재 밑에는 '괴목소'가 있었는데 1972년 홍수 때 묻혀 지금은 흔적이 없다. 이곳 괴목소에는 큰 이무기가 살고 있어서 사람들이 접근하기를 꺼리던 곳이다. 그 건너편에는 연당리에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상수원 수원지를 만들고 있다.

■ 돈대(墩臺)
와룡 건너편으로 동네 지형이 돛단배형국이다. 옛날 마을 가운데에 사방 2척 정도의 크기로 돌무더기를 쌓아 올린 '돈대'가 있었으므로 '돈대(돛대)→돈디'가 되었다. 돈대는 풍수학상 행주형국(行舟形局)의 마을에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뜻에서 높은 기둥인 돛대에 해당하는 '돈대'라는 돌무더기를 쌓았다.

마을 앞으로는 연당리 와룡으로 이어지는 38번 도로인 신연당교가 구교와 함께 있고 못도리를 지나면 배일치를 지나서 여촌(골말)과 신천(시내), 주천(술샘)으로 갈 수 있다. 북쌍리가 서면이었을 때는 이곳에 면사무소가 있었는데 1910년에 바깥새내(外新川)로 이전하였다.

■ 남생이 바우
돈디 동남쪽 강가에 있는 바위이다. 거북이보다 작은 파충류로 강에 사는 남생이처럼 동그랗게 생겼으므로 '남생이 바우'라 한다.

■ 배일치(拜日峙)
서면 광전리와 남면 북쌍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단종 대왕이 청령포로 귀양을 오면서 이곳 고개 마루에서 서산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앞날의 운명을 기원하며 절을 했으므로 '배일치'라는 지명이 붙었다.

■ 갈골(葛谷)
문성개(영월삼거리)와 옥녀봉(玉女峰)을 비켜 돌아 연당으로 가는 38번 국도 우측에 있다. 남쪽 강 건너로는 드넓은 갯벌로 형성된 문개실 마을이 있다. 이 골짜기에는 춘궁기인 보리고개 때 캐먹던 칡(갈, 葛)이 많았으므로 '갈골'이라 한다. 영월군 분뇨처리장 설치 문제로 영월군과 방절리, 북쌍리 주민들이 대치하던 곳으로 '소장터'와 '도축장'이 있다.

일정시대 때 주천으로 가는 신작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이곳 갈골이 가장 큰 교통로였는데 단종 대왕도 명라동, 군등치, 배일치재를 넘고 갈골과 옥녀봉, 그리고 선돌, 서강을 지나서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갈골'의 유래는 이 골짜기에 칡넝쿨(葛)이 많아서 붙여진 지명이다. 골짜기 안에는 계곡 물을 이용한 천수답이 있다.

■ 점말(店洞)
배일치 마을 가운데로 402번 지방 도로가 지나가는데, 그 도로 우측 고진호씨 집터 근처에 옹기 그릇을 만드는 옹구점이 있었으므로 '옹구점마을→옹구점말'이라 하였다. 옹기를 구울 때 쓰는 흙은 점골에서 가져 왔으며 이곳에서는 오짓물을 바르지 않은 시루, 장독, 물동이, 항아리 등의 질그릇을 만들어 냈다.

■ 점골
점말 위쪽에 있는 골짜기로 옹기그릇의 재료인 점토가 이곳에 있었으므로 붙여진 지명인데, 예전에 대장장이 며느리가 호랑이에게 불려갔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 주막거리
배일치 마을 개울 건너편으로 일정시대 때 402번 지방도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갈골에서 멸매골을 지나서면 옹정리 사정동으로 넘어가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행인들을 상대로 술과 음식을 파는 주막집이 있었으므로 '주막거리'라고 불렀다. 특히, 이곳 주막집에서는 '소주골'에서 만든 술을 가져다 팔았는데 일제시대 때는 밀주단속이 심하여 소주골에 숨어서 술을 만들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전에는 다섯 가구가 살았었다.

■ 불골
배일치 마을 북쪽으로 곧게 뻗은 골짜기이므로 '북골→불골'이라 하였다. 신작로가 생기기 전의 불골은 배일치 고개를 넘어서 여촌의 뱃마을로 넘어 다니던 옛길이었다. 원래의 배일치재는 402번 지방도 정상에 설치된 배일치재 표지석에서 좌측으로 한 마장쯤 떨어진 곳에 있다. 역사가 오랜 마을일수록 서낭당이 있는데 불골의 구 길가에도 서낭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신목(神木)만 남아있다. 불골은 북쪽으로 트인 골짜기이므로 겨울철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

■ 후포(後浦), 뒷개
돈디 뒤쪽 갯가에 있는 마을이므로 순수한 우리 땅이름으로 '뒷개'라 하였다. 한자식 표기법으로는 '후포(後浦)'라 하는데 땅이 기름지고 농사가 잘되는 부촌(富村)으로 담배와 고추농사를 많이 한다.

■ 대장골
후포교회 뒤쪽에 있는 골짜기로 동쪽인 마을로는 확트이고 다른 곳은 가로막혀 바람이 없는 곳이다. 예전에 야장들이 풀무를 설치하여 쇠를 벼름질 하던 대장간이 있었던 곳으로 농촌에 쓰는 농기구를 만들었다.

■ 문개실(北下里)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은 검각산(劍閣山)으로 이어진다. 전에는 남애 위쪽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널 수 있었으나 쇠목에 점토장이 만들어 지면서 갈골 앞에 잠수교가 세워졌다. 이곳은 물이 넘나드는 큰 개(浦)가 있는 마을로 비가 개인 후에는 물안개가 피어나 마을 전체가 물 위에 뜬 것처럼 보였으므로 '부개실(浮浦洞)'이라 하였으나 그 후 '문개실'로 지명이 변했다. 한 때는 '북하리(北下里)'라고 불렀으며, 경치가 아름답고 여름 한철 관광객이 많이 찾아드는 곳으로 영월 제1의 관광후보지로 손꼽히고 있다.

■ 새내기골
쇠목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큰솔밭과 시굿밭을 지나면 5천여평 정도의 넓은 펀디기밭이 있다. 한때는 목장을 하기 위해서 초지를 조성했으나 지금은 방절리의 선돌 사람들이 배를 이용하여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골짜기 안쪽은 새의 둥지처럼 동그랗고 날개의 형상이므로 '새날개골'→새날기골'이라 한다.

일설에는 옛날 어떤 사람이 이곳에다 막을 치고 화전밭을 일구면서 새로 이사를 와서 살던 골짜기이므로 '새내기골'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새내기'는 '새롭다, 신입생'등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 자료출처:「영월 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저자 엄흥용
파일

담당부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