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문화
| 읍면구분 | 산솔면 |
|---|---|
| 제목 | 연상리 |
| 내용 |
연상리
■ 연상리(蓮上里) 본래 영월군 상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1914년 연상리, 활라리와 정선군 신동면 석항리 일부를 병합하였으며 1986년 4월 1일 중동면이 되었다. 중동면 연상리는 영월읍 연하리와 석항 사이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이곳의 지명 유래는 마을 주변을 둘러싼 산봉우리가 연꽃봉우리 현상이고 연하초등학교 뒤에 연꽃이 피는 연못이 있었으므로 '연꽃 蓮'자와 '못 池'자를 써서 땅이름이 만들어진 '연지동' 위쪽에 있으므로 '연상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연상리는 법정 2개 리에 203가구 747명이 마구, 손도리골, 궁장동, 북실, 샘말 등의 자연 부락에서 밭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 돌고개(石峴) 연상리의 서남쪽으로 연하리(蓮下里)와 인접한 곳이다. 38번 국도를 개통할 때 이곳 돌산을 뚫으면서 길가에 많은 돌들이 쌓이게 되자 '돌고개'라 하였다. ■ 용소(龍沼) 영월에서 38번 국도를 따라 석항으로 가다가 좌측으로 길게 뻗은 미구(美九) 골짜기 입구에 있는 소(沼)이다. 이곳에는 용(龍)이 되어 승천(昇天)한다는 귀가 달린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으므로 '용소'라고 부른다. ■ 미구(美九) 영월에서 석항(石項)으로 이어지는 38번 국도 위에 태백석 철교가 지나간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냇물을 가로지르는 안경다리를 건너면 해발 853.6m의 높은 산인 고고산(高古山) 자락에 포근히 감싸여 있는 '미구'라는 마을이 있다. 미구라는 지명은 맑고 푸른 물, 기암절벽, 드넓은 초원, 약초와 산나물, 평화롭게 뛰노는 산짐승, 빼어난 산세, 붉게 타는 가을단풍, 심산계곡에서 자라는 물고기, 겨울산의 설경과 같은 아홉 가지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이 있어서 여름 한철 많은 피서객이 찾아들고 있으며 뜨내기식당이라는 음식점도 있다. 특산물로는 고랭지 채소, 유실수, 토종꿀 등이 생산되고 있는데 밖에서 보기와는 딴판으로 넓은 벌판과 밭이 있다. 마을 북쪽으로는 정선군 고성리(古城里)와 마구치를 경계로 하고 있으며, 골짜기의 길이는 4km정도가 된다. ■ 손도우골 궁장동 옆 골짜기로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옛날에는 호랑이의 행패가 심하여 마을의 가축이나 사람들을 물어갔다. 이러한 호환(虎患)을 방지하기 위해 이곳에다 호랑이를 잡는 손우(손오)를 설치했던 곳이므로 '손우골' 또는 '손도우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손우라는 기구는 낫처럼 생긴 손우칼을 칡이나 다래 넝쿨을 틀어서 그 위에 매어 놓고 호랑이가 튀김줄을 건들면 손우칼이 호랑이의 허리나 머리부분을 찍어 내리는 기구이다. 일설에는 자연 경관이 아름답고 망경대산 자락에서 흐르는 좁은 계곡 입구인 물목이 되는 곳이라는 뜻으로 '손돌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즉 '손돌'은 '좁은 물가'를 뜻하고 '손돌목'은 '좁은 물가의 길목'을 의미한다. 그 안쪽은 안손돌목과 궁장동이 있다. ■ 자영치(字嶺峙) 내손도우에서 하동면 예밀리와 주문리의 검바위를 지나 싸리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 궁장동(弓長洞) 돌고개를 지나 미구(美九)의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로 지금은 대여섯 가구가 살고 있다. 망경대산 자락이 길게 꼬리를 늘어뜨린 계곡 사이로 활(弓)모양으로 형성된 곡류천(曲流川)이 높고 낮은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채 손도우골을 지나 석항천과 합류하여 남한강 상류의 지류를 형성한다. 이곳은 지형이 커다란 활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궁장동'이라고 하는데, 계곡이 깊고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여름에는 많은 광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주문리와 화원리로 갈 수 있다. 또한 맑은 계곡물을 이용한 송어양식장이 있다. ■ 구미소(구무소) 북실 입구와 강원송어장 사이에 있는 소(沼)이다. 예전에 석항과 연상리 사람들이 이곳에서 천렵을 했던 곳으로 구멍이(구무) 움푹 파이고 물이 깊어서 명주실 한 꾸리를 다 풀어도 닿지 않았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여러번의 물난리를 겪는 과정에서 많이 묻혀버렸다. 구멍을 뜻하는 구무소가 세월이 흐르면서 '구미소'로 변하였다. ■ 북실 연상초등학교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한때는 30여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17가구가 살고 있다. 이곳은 북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북실'이라 한다. '실'이란 '골짜기(谷)'의 이두식 표기로 '마을'을 의미한다. 일설에는 이곳에 있는 산의 형상이 북을 달아놓은 것처럼 생겼다하여 '북실'이라고 한다는 얘기와 마을의 형상이 베틀에 사용하는 '북실'같이 생긴데서 유래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 샘말 북실 마을의 우측 언덕 위로 효자 유영복(劉永福)의 집이 있었으며, 물맛이 좋은 샘이 있으므로 '샘마을→샘말'이라 한다. ■ 덕골 샘말 위쪽으로 산 중턱 언덕 위에 넓은 평지밭이 있으므로 '덕골'이라고 한다. '덕'은 '산 위에 있는 평밭(坪田)'을 지칭하는 말로 '덕' 또는 '덕시'라고도 한다. ■ 북실 서낭당 북실 끝자락인 성문재 아래에 있다. 평소에 술을 많이 먹는 지발광이라는 환쟁이가 그린 당화(堂畵)가 서낭당 감실에 보관되어 있다. 연하리 숫가마서낭당과 두평서낭당에 있었던 그림도 같은 사람의 작품이었으나 6.25사변 때 없어졌다. ■ 성문재(城門峴) 북실 끝자락인 서낭당 북쪽에 있다. 성문재를 넘으면 옛날 성(古城)이 있었던 정선군(旌善郡), 신동면(新東面), 고성리(古城里)로 넘어갈 수 있으므로 '성문재'라 한다. 고성(古城)은 성문재를 넘고 평구와 내창을 지나 고방 마을에 있는 성으로 영월의 왕검성, 대야성, 태화산성 그리고 영춘의 온달산성과 같이 삼국 항쟁기인 5∼6세기경에 축조되었다고 한다. ■ 자료출처:「영월 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저자 엄흥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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