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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Home 역사/문화 지명유래
작성일 2017.12.04 , 조회수 1853
역사/문화>지명유래 상세보기 - 읍면구분, 제목, 내용, 파일 정보 제공
읍면구분 영월읍
제목 연하리
내용 연하리

■ 허보령골
초리의 L.P.G 충전소 동쪽에 있는 골이다. 예전에 경상도의 세도가인 허부령(본명 許智)이 죽자 그의 집안에서는 산세가 수려한 강원도의 명당에다 묘를 쓰고자 풍수쟁이를 앞세우고 상여를 맨 채 각한재를 넘어왔다. 그러나 명당에는 이미 단종 대왕의 능이 들어섰으므로 허부령의 아들은 화가 나서 풍수쟁이의 상투를 말꼬리에 매어 단 채 끌고 왔다. 그러자 풍수쟁이는 좋은 명당이 또 있다면서 지금은 연하 1리 계족산 밑에다 묘를 잡아주자 상주도 흡족해 하였다. 이곳은 묘를 얕게 파야 하는 데도 이 풍수쟁이는 화가 나서 청광터를 깊게 파라고 해서 사흘을 파니 갑자기 안개가 끼면서 소나기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 후 허부령 가문은 몰락해 버렸는데, 지금도 그의 묘가 있는 이 곳을 '허부령골'이라 부르고 있으며 허지(許智)의 묘비도 남아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묘를 허정승의 묘라고 부르고 있는데 예전에 시향 때가 되면 대여섯 마리의 말 바리에다 음식을 싣고 와서 동네잔치를 했다고 한다. 이 묘의 봉분은 보통 사람의 대여섯배 정도나 되는데 묘비의 판독은 힘들며 끝부분에 『許智之墓』라고 쓴 부분은 남아 있다.

양천 허씨(陽川許氏) 순흥파(順興波)의 족보에 의해서 밝혀진 이 묘비는 『순훈랑행보령현감허지지묘(承訓郞行保寧縣監許智之墓)』임을 알 수 있다. 승훈랑(承訓郞)은 조선 시대 6품 문관에게 주는 벼슬의 명칭으로 承議郞, 執順郞, 從順郞과 같은 서열이다. 이 비문을 통하여 허지는 6품인 보령현감을 지낸 인물로 그의 묘가 있는 이 골짜기를 '허보령골'이라고 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허부령골'로 변하게 되었다. 그의 묘 앞에는 미소를 가득 머금은채 서있는 남·녀의 얼굴 형상을 한 수호석 2기가 있다.

■ 두평 서낭당
두평 입구 도로 옆 느릅나무가 있는 숲거리에 있었던 당으로 태백산 산신령이 된 단종 대왕을 모시는 서낭당으로 6.25전 까지도 추익한이 백마를 탄 단종에게 머루를 바치는 영정이 모셔져 있었던 곳이다. 새마을 운동 때 당이 소실되었으며, 그 후 마을 뒤에 있는 큰 소나무 밑으로 옮겨서 매년 정월 초사흘에 당고사를 지내고 있다. 서낭당에는 위패는 없으며 지발광이 그린 칼을 찬 단종대왕과 1978년 서경선 씨가 그린 호랑이와 함께 있는 남·녀 화상이 보관되어 있다. 지금도 이곳을 '서낭목이'라고 부르고 있다.

■ 숯가마(炭釜洞)
연하리 어구마을인 초리, 허부령골, 배나무골, 음지, 양지마을 일대로 예전에 숯을 만들던 가마가 있었으므로 '숯가마(炭釜洞)'라 한다.

■ 배나무골
초리 동쪽인 개샘이골 위에 있다. 예전에 이곳에 커다란 신배나무가 있었으므로 '배나무골'이라고 한다. 두평역 뒤쪽으로 '용주사'라는 절이 있으며 물이 많아 송어를 키우고 있다.

■ 두평(드들, 두랭이)
이곳의 옛 지명은 '드들' 또는 '두릉'이라 하는데 다른 마을보다 높은 언덕 위에 있다는 뜻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두들은 한자 표기식인 두평(斗平)으로 개칭되었다. 숯가마와 태백기도원이 있는 남정골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 연하굴
기념물 31호로 동강의 하상에서 15m에 위치한 굴이다. 좁은 입구에 길이는 200m 정도이며 2개의 넓은 광장으로 형성되었으며 수많은 석순과 종류석으로 이루어졌다.

■ 연못골(蓮池洞)
연하리의 본동으로 연하초등학교가 있는 동네이다. 풍수학적으로 이곳은 연지동을 중심으로 모든 산 줄기가 연꽃의 꽃잎 모양을 형성하고 있으며, 초등학교가 있는 곳은 꽃의떡잎에 해당하고, 그 아래쪽의 많은 논들은 꽃의 생식기관인 꽃술에 해당한다.

■ 계사동(연하폭포)
바람부리와 폭포주유소 남쪽으로 응봉산 자락에 싸인 골이 깊은 마을이다. 여름철에는 기암괴석과 우거진 활엽수 사이로 차디찬 계곡 물이 흐르는 천혜의 자연 관광지로서 유명하다.

국도에서 골짜기로 150m쯤 떨어진 곳에는 용이 승천하면서 큰 바위에다 발자국을 남긴 '용소폭포(龍沼瀑布)'가 있고, 그 위에는 흔히들 '연하폭포'라고 부르는 '계사폭포'와 송어를 부화하는 치어양식장이 있다. 현재 7가구의 화전민들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청소년 야영장도 있다.

■ 오산(烏山), 오매, 오미
바람부리를 지나 석항리의 미구(美九)와 돌조개 사이에 있다. 이곳은 연하리 사슴목장과 삼척산이 있는 곳으로 마을 뒷산의 지형이 까마귀가 춤을 추는 형상이므로 '오산(烏山)'또는 '오무(烏舞)'라 한다는 얘기가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이야기인 듯하다.

이 마을에 있는 삼척산은 특이하게도 마을 한가운데 다른 산과 연결되지 않은 채 솟아있으므로 '외메'가 된다. '외(孤)'는 음차(音借)현상에 의해서 '오'가 되었고 '메'는 '산(山)'이라는 뜻이 되므로 '외메(외따로이 있는 산)'가 되었다. 그후 우리말의 지명이 한자식으로 표기되면서 '왼'는 '오(烏),로, '메'는 '산(山)'으로 변하여 '오메→오산(烏山)'이 되었다. 이는 방절리의 마굿이 소가 엎드려 있는 형국에서 따온 지명인데, 한자식으로 표기되면서 전혀 뜻이 다른 마곡(麻谷, 삼베를 많이 심는 골)으로 변한것과 똑같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삼척에 사는 김씨성을 가진 사람이 토호(土豪)의 착취를 피하여 삼척산이 있는 이 동네로 이사를 와서 큰 부자로 잘 살고 있었다. 소문을 들은 삼척의 토호는 영월까지 찾아와서 김씨 집 뒤에 외따로 떨어진 이 산을 삼척에서 온 산이라며 해마다 추수가 끝나면 세금을 받아갔다. 삼척 김씨는 너무나 억울하고 또한 과다한 세금을 감당할 길이 없어 나날을 한숨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특하기로 소문난 그의 어린 아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삼척산에다 칡넝쿨을 심었는데, 이 칡넝쿨이 삼척산을 휘감아 꽁꽁 묶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토호가 삼척산이라 하여 매년마다 높은 세금을 받으러 오자 "호방어른! 이 산을 삼척산이라 하여 매년마다 높은 세금을 징수해 가시는데, 저희 집은 이 산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칡넝쿨로 산을 묶어 놓았으니 이 산을 아예 삼척으로 가지고 가십시오"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호방은 말을 잊은 채 삼척으로 돌아갔으며 그후부터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았으므로 그때부터 이 산을 '삼척산'이라고 불렀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 장자터
오무의 남쪽인 사슴 목장 뒤에 있다. 이곳은 까마귀가 춤을 추는 烏舞地形의 명당이라 한다. 삼척에서 토호들의 착취를 견디다 못해 이곳으로 이사 온 삼척 김씨가 이 터에다 집을 짓고 인근 마을에서는 부자 소리를 들으면서 살았던 터이므로 '장자터'라고 한다는 전설이 있다.

■자료출처:「영월 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저자 엄흥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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