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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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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12.04 , 조회수 1376
역사/문화>지명유래 상세보기 - 읍면구분, 제목, 내용, 파일 정보 제공
읍면구분 북면
제목 덕상리
내용 덕상리

■ 덕상리(德上里)
북면 덕상리는 배거리산밑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 제덕원(濟德院)이라는 원집이 있어서 고덕치를 넘어 평창 약수역(藥水驛)으로 가는 행인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이웃마을인 연덕리 연평에는 '연평역(延平驛)'이 있어서 관원들에게 말을 빌려주었다.

덕상리는 연평의 원동재를 넘어가는 길과 서면 광전리 여촌앞으로 지나는 길이 있다. 지금은 2개 행정리에 75가구 281명의 인구가 주로 콩, 옥수수, 감자농사를 지으면서 원동, 용수골, 윗덕전이, 아랫덕전이, 쇠실, 새마을 등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 원동재(院洞峙)
북면 연덕리(延德里)의 연평역(延坪驛)에서 평창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구비와 여사가 심하다. 제덕원(濟德院)이 있었던 원동마을로 가는 고개가 있었으므로 '원동재'라 하였다. 지금은 산능선을 따라 31번 국도가 개통되어 산마루에는 작은 휴게소도 있다. 예전에 원동재를 넘은 상인과 행인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덕상리의 제덕원에서 쉬었다가 평창군과의 경계인 고덕치를 넘어 5일장인 대화, 봉평, 진부장을 다녔다.

■ 고덕현(古德峴)
원동(院洞)뒤에 있는 고개로 영월군(寧越郡)과 평창군(平昌郡)의 경계가 된다. '고덕재'란 '크고 높은 고개'라는 뜻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古德峴在郡北四十三里』라고 기록되어 있고 「영월부읍지」에는 『古德峙 在付北 距四十三里』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31번 국도가 개통되었지만 길이 험하고 경사가 심한 곳이다.

■ 원동(院洞)
원동재에서 용소동(龍沼洞)으로 내려가는 첫 동네이다. 예전에 행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제덕원(濟德院)이라는 원집이 있었으므로 '원동'이라고 하였다. 예전에 원주, 제천, 주천에서 오는 사람들은 뱃말과 쇠실을 지나 이 마을에 있었던 원집에서 숙박을 하였으며, 영월쪽에서 연평역을 지나 고덕치를 넘는 사람들도 날이 어두워지면 원집에서 잠을 잤다.

일정 시대 때까지도 원동에는 집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삼(森)으로 지붕을 이었고 참나무 껍질로 굴피지붕을 해 이었다. 집의 구조는 방이 여러 개인 곱집으로 해방 때 이병옥씨가 면으로부터 불하 받아서 살았다고 한다. 즉, 원동재 밑 첫 번재 집인 이병옥(이종기부친)씨 집이 옛날 원집자리였다.

■ 용수골(龍水谷)
문곡초등학교 덕상분교가 있으며 덕상리의 본동이 된다 마을 앞에는 원동에서 시작되는 덕상천(德上川)이 흐른다. 종지봉 건너편인 냇가에 용이 승천했다는 맑고 찬물이 솟아나는 굴물이 서낭당 뒤편에 있으므로 '용수골'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용수골에는 수백 년이 지난 큰 식목인 느릅나무와 서낭당이 있는데 정월 초이틀에는 마을 사람들이 당고사를 지내고 있다.

■ 종지봉(鐘芝峰)
용수골과 먹골 중간에 높이 치솟은 산봉우리다. 그 형상이 작은 그를신 종지기 모양으로 생겼으므로 '종지봉'이라 하였으며, 일설에는 임진왜란 때 이 산에서 큰 종이 발견되어서 생긴 이름이라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 청용안(靑龍內)
덕상리는 현대시멘트 채석장이 있는 베거리산(石船山)의 맥이 흘러내려 그 혈(血)이 종지봉에서 명당자리를 형성하였다. 풍수지라학상 이 마을의 좌청룡에 해당되므로 '청용안'이라고 하였다. 청용안은 연덕리의 사만이를 지나 문곡리(文谷里)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 윗덕전이(上德田)
청용안과 청용안과 아래덕전이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아래덕전이 위쪽에 있어서 '윗덕전이'라고 한다.

■ 아래덕전이(下德田)
행정구역상 덕상 2리인데 북면(北面)의 덕상 1리와는 높은 산으로 가로막혀 있어서 두치재를 넘어 다녔다. 전에는 덕전분교가 있었으나 농촌인구의 감소에 따라 학교는 폐교가 되고 지금은 서면 광전리(廣錢里)의 여촌(驪村)초등학교에 다닌다.

■ 쇠실(金谷)
서면 여촌의 골말을 지나 북면과의 경계인 금곡교(金谷僑) 건너에 있는 마을이다. 예전에 쇠를 캐던 철광이 있었던 마을이므로 '쇠실(金谷)'이라고 했는데 그 뒤에는 구영골이라는 작은 골이 있다. 쇠실에서 1차선 도로를 따라 동북쪽으로 가면 새말, 용소골, 원동을 지나 31번 국도와 연결이 된다.

■ 새말
배거리산 밑에 있는 마을로 덕상천의 물을 이용하여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생활한다. 이곳은 산과 산 사이에 형성된 마을이므로 '사이의 마을'이란 뜻의 '삳마을→새마을→새말'이라는 이름으로 변하였다.

■ 배거리굴
쇠실 북쪽 배거리산(일명 石船山, 852.5m)에 있는 석굴이므로 '배거리굴'이라 한다. 예전에 난리가 났을 때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피난을 하였다고 한다.

■ 배거리산
북면, 서면, 주천면의 경계에 위치한 높은 산이다. 일명 석선산(石船山)이라고 하는데, 옛날에 창령사(蒼嶺寺)라는 절이 있다. 산의 형상이 배모양으로, 천지 개벽 때는 모두 물에 잠기고 뱃전 크기만큼 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현대시멘트공장의 원석채취장(原石採取場)으로 그 모양이 점차 파괴되어가고 있다.

■ 자료출처:「영월 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저자 엄흥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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